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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동회와 초기 끼리끼리의 운동(전해성 컬렉션)

1990년대 초동회와 초기 끼리끼리의 운동(전해성 컬렉션)

1990년대는 한국 성소수자 운동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라는 점에서 중요한 시기다. 1991년 11월에는 주한 외국인 레즈비언 모임인 사포가 결성되었는데, 사포는 한국에서 결성된 가장 오래된 퀴어 모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1993년 말에는 "한인 동성애자 모임"*인 초동회가 설립되었다. 초동회는 1994년 1월 말 소식지를 발간하고 이를 여러 곳에 배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초동회는 소식지를 발간하고 얼마 안 지나 해산을 결정했다. 이후 1994년 2월 친구사이, 1994년 11월 끼리끼리(현, 한국레즈비언상담소)가 설립되면서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것이 한국 성소수자 운동 혹은 퀴어 운동의 출발에 관한 약사(略史)다.

*<초동회는 소식지를 발간하며 자신들을 한인 동성애자 모임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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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1990년대 성소수자 운동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단체 설립을 논의하고, 운동 전략을 구성하고, 캠페인 전략을 논의했을까. 이 질문은 1990년대 성소수자 운동과 관련한 기록물이 별로 없어 그 시기를 알기 어렵다는 의미의 질문이 아니다. 친구사이와 끼리끼리에서 발간한 단체 소식지가 상당한 분량으로 남아 있고, 잡지 <버디> 전 권과 <보릿자루> 상당수가 남아 있다. 1990년대 결성된 몇 개의 협의체가 생산한 문서도 남아 있다. 이들 기록은 1990년대 퀴어 운동에 대한 매우 귀중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귀중하지만 아쉬운 점은 이들 기록물 대부분이 1990년대 중후반에 생산되었다는 점이다. 당시로서는 생생하고 가까운 과거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초동회 설립과 관련한 내용, 끼리끼리 설립과 관련한 내용 같은 것은 빠져 있다. 지금까지 알려져 있는 1990년대 관련 자료는 1990년대 중후반에 대한 기록이다. 그렇다면 1990년대 초중반의 시기를 다룬 기록물이 있다면 어떨까. 1990년대 초중반에 사람들이 쓴 편지, 회의록 같은 자료가 있다면 1990년대는 훨씬 더 풍성한 기록이 남은 시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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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동회와 초기 끼리끼리의 운동(전해성 컬렉션)”은 초동회 설립부터 끼리끼리의 활동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기록물의 모음이다. 따라서 이 컬렉션은 지금까지 남아 있던 1990년대 관련 기록물을 보충하는 동시에 1990년대 퀴어 운동의 역사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컬렉션은 한국 퀴어 운동사에서 매우 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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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1993년 초동회가 시작했고 소식지를 만든 직후 해산했다는 정도의 기술로 끝내지 않아도 된다. 초동회 회의에서 커밍아웃 스토리를 공유하며 중화요리를 먹었다는 말을 할 수 있다. 또한 유명 패션 디자이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다수의 초동회 관련 회의록, 자료를 통해 초동회는 소식지 하나로 끝나지 않는 단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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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회가 해산되고 끼리끼리가 설립되기까지 10개월 가량의 시간 차가 존재하는데, 지금까지 이 시기의 여성 성소수자 활동가의 활동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그 시기 동안 여성신문의 기사에 항의 편지를 쓰고, 단체 설립을 위해 사람들을 모으는 등의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끼리끼리를 설립한 이후 활동가들 사이에 있었던 미묘한 긴장감을 해소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고, 롤링페이퍼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향한 마음이 어땠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무엇보다 끼리끼리로 보내진 무수히 많은 편지는, 활동가가 아니어도 운동 방향과 방식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애정을 보여준다. 지금도 종종 사용하는 정체성에 있어 성골과 진골 논쟁이 어떻게 농담처럼 등장했는지도 알 수 있다. 초동회 회의록과 끼리끼리 단체 영문명에 바이섹슈얼이 같이 논의되는 것을 보며 바이섹슈얼에 그렇게 배타적이지는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고, 회의 과정에서 트랜스젠더를 언급하며 보인 미묘한 태도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를 읽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끼리끼리 소식지를 계속 받고 싶어하는 미국과 일본 활동가의 기대와 응원, 연대 의식도 알 수 있다. 이것 외에도 훨씬 더 많은 다양한 내용이 “1990년대 초동회와 여성 성소수자 운동(전해성 컬렉션)”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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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1990년대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는 더욱 구체적이고 풍성해졌다. 퀴어 운동의 역사는 할 말이 더 많은 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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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컬렉션은 

https://queerarchive.org/collections/show/13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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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컬렉션을 기증해준 전해성 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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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컬렉션에 포함된 기록물에는 모두 실명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해당 내용이 온라인 상으로 유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록물의 형태는 보이지만 내용은 보이지 않게 해상도를 조절해서 기록물 이미지를 올렸습니다. 또한 전해성 컬렉션에 포함된 모든 자료는 구체적인 연구 목적을 가진 사람에 한하여 퀴어락 서가에 직접 방문한 뒤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초동회 - 1994.01.06. 제2차 초동회 모임 기록 [전해성 전해성]

1994.01.06.

제2차 초동회 모임 기록

초동회 - 1994.02.15. 한국 동성애단체 구조 제안서 [전해성 컬렉션]

1994년 2월 15일 작성한 한국 동성애 단체 구조 제안서다.

초동회 이후의 단체 구성을 가늠할 수 있다.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1993년 12월 즈음 설립된 초동회를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현재까지 알려져 있고 공개되어 있는 초동회 관련 자료는 소식지(SE-0000273)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컬렉션을 통해 초동회는 막연히 한국 최초의 성소수자 단체이기보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논의했는지를 알 수 있는 단체가 되었다.

전해성 컬렉션에 포함된 기록물 중 초기 기록물 몇 건은 초동회에서 생산한 회의록이다. 1994년 1월 6일에 작성한 회의록(DB-0002430)은 초동회 운영을 위한 두 번째 회의 자료인데, 회의를 위해 중화요리를 먹으며 사전에 준비한 주제를 논의하고, 뒷풀이로 게이바에 갔다는 내용이 모두 담겨 있다. 이 자료를 통해 초동회 활동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994년 1월 말 초동회가 해산된 후, 친구사이는 곧바로 단체를 설립했지만 끼리끼리는 얼추 10개월 가량의 시간을 두고 단체를 설립했다. 그럼 그 사이 여성 성소수자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1994년 2월 15일 운동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회의의 회의록에 따르면 "초동회 女 -- SAPPHO"라는 명칭이 나온다. 이 말은 초동회의 해산이 곧 여성 성소수자 운동의 중단이 아님을 의미한다. '초동회 女'라는 명칭은 실제 사용한 명칭이라기보다 임의로 붙인 명칭일 가능성이 더 크지만, 그럼에도 운동의 부재가 아니라 임시 명칭을 붙여야 할 정도로 분명한 집단으로 존재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1991년 11월에 설립한 사포(SAPPHO)와 연결 고리를 만들어 둠으로써, 초동회, 그리고 끼리끼리를 만들고자 했던 활동가들이 사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암시해준다. 그렇듯 이 기록물은 1990년대 초기 한국 성소수자 운동의 지형을 알려주는 중요한 기록이다.